가사
여름아
그래, 이제 가라
에어컨 값도 많이 나왔다
가을아, 넌 좀 천천히 와
너 뒤에 걔 있잖아
겨울
걔 오면 또 한 살이잖아
반팔을 개다가 생각이 샜네
작년의 나도 이 옷을 갰네
날씨는 선선, 마음은 섭섭
달력은 왜 벌써 다음 장에 갔네
잠깐만 가을아, 거기 좀 서 봐
오는 건 좋은데 혼자 좀 와 봐
겨울은 두고, 연말도 두고
내 나이 한 칸은 비워 두고 와
어릴 땐 빨리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니까 월요일 되고
월요일 버티면 금요일인데
눈 깜짝하니까 일 년이 됐네
숫자는 다들 잘도 크는데
내 통장만 낯을 가리네
나이도 물가도 손잡고 뛰는데
월급아, 너는 왜 거기 서 있니
올라 올라, 나이만 올라
월급은 그 자리, 숨만 더 골라
돌아 돌아, 또 제자리 돌아
이번 달의 나를 다음 달로 몰아
가을아 와라, 아니 잠깐만
좋은 계절인데 왜 맘이 급할까
오늘은 길고 일 년은 짧아
나 아직 뭘 했는지도 몰라
나이만 올라, 올라, 올라
월급도 좀 올라, 올라, 올라
돌고 돌아, 돌아, 돌아
일단 커피부터 골라, 골라
그래, 월급 말고 하나 더 벌자
퇴근한 나를 한 번 더 굴리자
누군가는 자면서도 번다는데
나는 잠을 줄여 가며 결제를 한다
입문반 듣고 심화반 듣고
필요하대서 구독도 누르고
벌기도 전에 장비를 고르고
첫 수익 대신 할부가 찍혀
강의는 쌓여, 폴더는 빼곡
계획표 속의 난 거의 대기업
현실의 나는 새벽 두 시 반
비밀번호 찾다가 하루가 갔어
이것도 된다, 저것도 된다
왜 되는 얘기만 자꾸 들릴까
나 빼고 다들 문을 찾았나
나는 또 문 앞에 매트를 샀나
돈 벌려고 돈을 썼는데
쓴 돈 벌려고 또 배우네
배운 게 많아져 머리는 무거워
주머니는 왜 더 가벼워지니
올라 올라, 나이만 올라
월급은 그 자리, 숨만 더 골라
돌아 돌아, 또 제자리 돌아
이번 달의 나를 다음 달로 몰아
가을아 와라, 아니 잠깐만
좋은 계절인데 왜 맘이 급할까
오늘은 길고 일 년은 짧아
나 아직 뭘 했는지도 몰라
누가 내 수입에
자물쇠라도 채워 놨나
비밀번호가 뭔데
설마 그것도 강의로 파나
아, 인생 쓰다
하이고, 참 쓰다
입안이라도 좀 씻자
커피나 마시자
메뉴판 앞에서 잠깐 멈췄다
얼음 든 한 잔도 만만치 않다
제일 싼 걸로 주세요
쓴 걸 마셔서 쓴 게 가시겠어요
뭐
시원하긴 하겠네
올라 올라, 나이만 올라
기타야, 너라도 시원히 올라
돌아 돌아, 또 제자리 돌아
웃다가 한숨이 박자를 놓쳐
가을아 와라, 에이 그냥 와라
문 닫는다고 네가 안 오겠냐
낙엽은 밟고 출근은 하고
오늘도 어제랑 비슷하게 살아
올라 올라, 나이만 올라
월급아, 눈치 좀 봐라 좀 봐라
돌아 돌아, 하루가 돌아
얼음만 달그락, 달그락거려
싼 커피 한 잔 들고
집에 와서 털썩
장판 끝이 또 들떴네
저거 언제 붙이냐
아…
나 뭐 하려고 했더라
맞다
강의
…커피 다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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