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역 앞의 공사가 끝나고
펜스도 전부 사라졌어
너와 함께 걷던 뒷골목은
이제는 평범한 지름길이야
냉장고 가장 안쪽에는
네가 두고 간 매운 소스
유통기한이 사흘 지나 있어서
왠지 웃으며 버릴 수 있었어
거창한 결심보다
이런 일로도 변하는구나
마음보다 한발 앞서
일상이 먼저 나아가
더 이상 돌아가는 길이 아니야
너와 함께 돌아가던 그 길도
지도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의미만 먼저 달라져 가
잊고 싶은 것도 아니고
기억하고 싶은 것도 아니야
좋아했던 것들까지 미워하지 않고
오늘을 제대로 보내고 싶어
마트 장바구니 안에는
두 사람 몫의 습관이 아직 남아 있어
달걀은 여섯 개짜리로 고르고
짐은 조금 가벼워졌어
주말 예정표에는
모르는 가게 이름을 적어 넣었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어도
밖으로 나갈 이유는 만들 수 있어
“잘 지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대답은 조금씩 달라져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
더 이상 돌아가는 길이 아니야
피해서 걷던 거리마저
신호등 색도 가게 이름도
예전과 같은데 다르게 보여
끝난 일을 굳이 깔끔하게
정리할 필요는 없어
하지 못했던 말 대신
새로운 일정을 적어 넣었어
옳았는지 아닌지
지금도 가끔 생각해
선택하지 않았던 미래까지
짊어지고 걸을 필요는 없어
네가 없는 매일을
불행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만뒀어
조금 비어버린 이 여백에
내 소리를 놓아갈 거야
다시 한 번이 아니라
여기서부터면 돼
숨을 들이쉬고
더 이상 돌아가는 길이 아니야
그 길을 오늘도 걸어가
떠올릴 때마다 멈춰 설 만큼
한가하진 않다며 웃을 수 있을 만큼
잊은 척하지도 않아
돌아가고 싶은 척도 하지 않아
너를 좋아했던 나도 데리고
다음 신호에서 길을 건너가
지도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그래도 풍경은 변해 가
너와의 다음이 아닌 오늘을
제대로 내가 선택해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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