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알람은 또 여섯 시
눈 뜨자마자 출근해
어제 입은 셔츠 그대로
향수만 조금 뿌려 놔
거울 속에 웃는 얼굴
어제도 본 것 같은데
누가 먼저 만든 표정인지
이제는 나도 모르겠어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
전부 같은 곳을 보고
누구 하나 말을 안 해
나도 그냥 고개를 숙여
회사에선 또 웃어
“좋은 아침이에요”
점심엔 또 웃어
“주말엔 뭐 하세요?”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 말 하나면
오늘도 지나가니까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대답은 하는데
이 목소리가
정말 내 것인지 모르겠어
얼마나 더 가짜여야 해
좋은 사람인 척
괜찮은 사람인 척
사랑하는 척
살아 있는 척
하루를 버리고
하루를 또 버리고
누가 나 좀 꺼내 줘
이 안에서
아무도 안 오네
친구는 돈이 필요하대
연인은 오늘 바쁘대
나는 둘 다 이해한다고
또 아무렇지 않게 말해
사진 속에선 웃고 있어
좋은 하루였던 것처럼
올려놓고 몇 분 지나면
나도 그걸 믿어 보려 해
방에 들어오면 조용해
불도 켜기 싫은 밤
책상 위엔 뜯다 만 택배
바닥엔 입었던 옷
냉장고는 텅 비었고
휴대폰은 계속 울려
답장을 해야 하는 사람
몇 명인지 세기도 싫어
구석에 쌓인 빈 캔들
치울 생각도 안 들어
하나씩 늘어나는 걸 보며
오늘도 지나갔다고 생각해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습관처럼 내뱉으면
진짜가 될 줄 알았어
거울을 봐도
아무 말이 없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복사해
얼마나 더 가짜여야 해
좋은 사람인 척
괜찮은 사람인 척
사랑하는 척
살아 있는 척
내일을 기다리는 척
꿈이 있는 척
누가 나 좀 깨워 줘
이 안에서
아무도 안 오네
퇴근길 횡단보도
빨간 불이 길어지고
사람들은 신호가 바뀌면
아무 일 없던 듯 건너가
나는 왜 이렇게 서 있어
뭘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하늘은 너무 멀고
숲은 이상하게 조용해
바다는 아무 말 없이
계속 같은 소릴 내
높은 건물 사이에 서면
내가 너무 작아 보여
가끔은 생각해
전부 놓고 사라지면
조금은 편할까
그러다가 또 웃겨서
혼자 고개를 저어
내일 출근은 해야 하니까
이게 삶이라면
왜 이렇게 조용해
큰 사건도 없고
끝나는 일도 없고
그냥 조금씩
나를 닳게 만들고
아무도 모르게
하루가 없어져
얼마나 더 가짜여야 해
좋은 사람인 척
괜찮은 사람인 척
사랑하는 척
살아 있는 척
시간을 견디는 척
나를 믿는 척
누가 나 좀 꺼내 줘
이 안에서
아무도 안 오네
신에게 물어봤어
정말 듣고 있다면
왜 아무 말도 없어
기도를 몇 번이나 바꿔도
대답은 똑같았어
침묵
그래서 한동안
기도하지 않았어
내가 믿음이 없는 건지
신이 나를 버린 건지
아니면 애초에
아무도 없는 건지
모르겠어
근데 이상하게도
오늘 밤은
조금 춥네
그래서 창문을 닫았어
방 안은 엉망이고
싱크대엔 컵이 쌓였고
빈 캔은 산처럼 남았고
내일 할 일은
오늘 한 일보다 많고
전화는 뒤집어 놨고
불은 하나만 켜 놨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래도
나는 여기 있어
얼마나 더 가짜여야 해
좋은 사람인 척
괜찮은 사람인 척
사랑하는 척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척
그런데 오늘만큼은
척하지 않을래
누가 나를 구하든
아무도 구하지 않든
오늘은 그냥
여기 있을래
알람은 또 여섯 시
셔츠를 걸어 놓고
휴대폰을 충전하고
불을 끄고
내일도 똑같겠지
아마도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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